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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디아스포라의 민족문화와 정보화 세계에서의 변화 양상


김 디아나(Tashkent State Pedagogical University named after Nizami)


주제어 : 민족문화, 변혁, 디아스포라


현대 문명의 조건에서 민족문화적 가치의 문제는 다음과 같은 많은 요인에 달려있다. 특히 한 민족이 타인을 모방하지 않으면서 삶의 터전을 찾고 만족할 수 있으며, 출신지와 출생지별로 민족의 전통을 결합해 개방과 경제경쟁의 도전을 감수하면서도 정신적 기반을 유지하는 역량이 곧 그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 조건은 글로벌 세계에서 민족문화적 가치의 상호작용 과정 - 무엇을 어떻게 빌리고, 채택하고, 동화되는지에 대한 인식이다. 민족문화의 패러다임과 그 발전의 조건을 옹호하면서 무엇을 적용시킬 수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려인 디아스포라 역시 현대문명의 사회변동에 영향을 미치는 경향을 파악하여 본인의 사회성(social nature)을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사회에서 대두되는 문명의 변화로 인해 민족문화적 가치라는 심도있는 주제의 연구 필요성이 강조되었다.

한민족의 역사에서 많은 이주 과정이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디아스포라가 형성되었다. 유럽인의 이민 규모와 소련의 붕괴와 함께 유라시아 공간에서 디아스포라 현상이 세계적인 성격을 갖게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려인뿐만 아니라 다른 해외동포 디아스포라의 주요 특징은 다른 민족 공동체와 근본적인 차이점을 결정하는 일련의 속성을 포함하기 때문에 ‘초국적’이라는 특성을 보인다. 이 특성을 연구하지 않고는 현대 사회에서 그들의 형성과 기능의 이민 특성을 명확히 하고 디아스포라 과정에서 발생하는 통합, 정체성 및 관용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초국적성은 국제 공간에서 이주동기로 인한 민족적 분산을 특징으로 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능이 포함된다.


● 다문화성(서로 다른 문화 및 언어 체계에 주제로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능력)

● 초국적성 (거주하는 사회와 역사적 고향의 국가 모두에 어느 정도 속함);

● 초국경성 (국경 및 국경 지역의 디아스포라 공동체 거주).


이 글의 초점은 소비에트 시대에 형성된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초국적성을 살펴보고 문화적, 정치적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파악하는 데 있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이를 바탕으로 디아스포라 현상에 대한 후속 연구에서 기준점이 될 수 있는 방법론적 성격의 특정 결론을 공식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고려인 사회는 북한, 중국, 일본과 접해 있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에 밀집해 살고 있으며, 이 지역에도 상당한 수의 조선족이 살고 있다. 따라서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초국적성은 다소 높은 수준이다.

우즈베키스탄 고려인은 많은 역사적(1937년 한국과 국경을 접한 소련의 극동 지역에서 중앙아시아 및 러시아로의 대규모 추방) 및 정치적 이유(우즈베키스탄 또는 CIS 국가의 시민권 보유, 한국 정부에 대한 정치적 정체성 부족)로 한민족으로서의 연결성을 잃었다). 상황은 해당 국가의 시민이지만 외국 출신 개인의 초국가적 (초문화적) 입장을 미리 결정한다. 초국적성의 보존에 있어 중요한 역할은 민족집단과 당국의 소수자에 대한 인식 특수성에 의해 수행된다. 다른 국적의 관점에서 고려인의 성격에 대한 대략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에 있다.


● 우즈베키스탄 주민 대다수는 한인을 고유한 문화와 생활 방식을 가진 특별한 소수 민족 공동체로 인식하고 있다.

● 우즈베키스탄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은 한국을 우호적으로 여기지만 여전히 외국의 이미지로 생각한다.

● 오랜기간 관련 우즈베키스탄 국가 기관의 관심의 중심에 한인들이 있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한국과 북한이 통일 문제와 관련한 우즈베키스탄 고려인의 정책에 대해 공통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이 다양한 공적 영역에서 우즈베키스탄 디아스포라를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포함한다.

극동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디아스포라는 다음과 같은 다국적 그룹으로 구성된다.


● 1937년 극동에서 중앙아시아로 추방되었다가 20세기 50-70년대에 돌아온 최초의 고려인 정착민의 후손들;

● 1945년 이후에 노동이주로 하바롭스크 영토, 사할린, 캄차카 지역에 정착하여 거주한 북한 주민;

● 1930년대 후반과 40년대 초반 일본의 노동동원으로 사할린에 도착한 고려인과 그 후손들

● 소련 붕괴 이후 극동으로 강제이주한 중앙아시아와 카자흐스탄 출신의 난민 및 국내 실향민.


이러한 상황은 고려인 디아스포라 내에서 상당한 사회문화적, 그리고 어느 정도는 문화적, 정치적 차이를 결정하며, 이는 미래 사회에서의 민족 정체성 식별 및 통합 과정을 크게 복잡하게 만든다.

특히 1937년 재정착 이후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민족문화적 문제가 강조되어야 한다. 소비에트 시기 한인의 범주에 속하는 모든 것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았다. 이주 및 정착 초기 중앙아시아 한인 대다수가 밀집해서 거주하려고 했다면(예를 들어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 지역), 명목상으로는 SSSO (소비에트 학생건설/농업 분견대)와 특정기관에서 모국어를 가르치고 민족문화를 가르쳤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려인 디아스포라는 점점 더 흩어졌다.

이러한 상태로 인해 현 세대는 정신의 안정된 기반이 부족하여 거주지나 어느 사회에서나 다방면으로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민족 문화적 기원에서 한인 디아스포라의 민족문화적 문제가 발생한다.

고려인 디아스포라 3, 4세대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배척당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삶의 과정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고려인 3,4세는 정신 및 영적 상태 모두 느린 발달 과정에 있으며 이는 향후 그들의 여생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자신의 문화와 전통에 대한 지식이 퇴보하고 자신이 속한 사회의 전통과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디아스포라의 초국적성은 이중문화주의와 다문화주의에서 발현된다고 할 수 있다. 긍정적인 초국적성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수용사회에서 디아스포라의 통합에 대한 국가 정책의 실행을 위한 조건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긍정적인 정체성의 보존은 디아스포라 공고화 정도에 따라 결정되지만 결국에는 조국의 지원에 달려 있다. 이와 관련하여 초국적성에 대한 연구는 민주주의와 규율 관계의 맥락속 에서 실행된다. 이 연구는 최적의 통합 모델을 찾아야 할 긴급한 필요성의 원인이 된다. 디아스포라와 – 수용사회간의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결정하는 통합 모델의 효과는 디아스포라민족과-문화 및 정치 제도를 그들의 필요에 맞게 조정하는 사회와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참고문헌

Blyakher L.E. 극동의 정치적 신화 // 폴리스. 2004. 5호.

바실리크 M.A. 정치학: 사전 참조 도서. M.: Gardariki, 2000.

김 A.S. 디아스포라의 초국적 성: 학제간 분석// 공간경제학. 2006. 1호.

Khan V.S., 심홍 용. 중앙아시아 한인: 과거와 현재 M: MBA.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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